Intercity Church of Santa Maria

칼럼 (Column)
 
Date : 18-06-04 08:36
내가 마음에 두는 사람
 Writer : 관리자 (73.♡.16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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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이다. 어느 날 우리 교회에 한 남자가 예배에 참석했다. 예배 후 그는 자신에 대해, 부산의 동아대학 영문과를 나와, 필리핀에서 치과대학을 마치고, 미국에 갓 왔고, 우리 교회 근방의 웨스턴 치과병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하였다. 이야기 하는 태도를 보아, 보기 드물게 순수하고,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혼자 왔기 때문에, 그가 사는 아파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교회에서는 간단한 밥 식기, 가재도구...들을 마련해 주었다. 한국에서 아내와 아들이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를 보는 순간, 수 십 년 전 내가 미국에 왔을 때, 아무 것도 없었던 때가 생각났고, 한편으로는, 나의 아들이 바로 그 해가 치과대학을 졸업한 해가 되어서, 일종의 동료의식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었고, 또 내가 어릴 때, 한국동란 당시 부산의 동아대학 근처에서 피난 생활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하였다.  

사람이란,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눈빛, 말하는 태도,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취직할 때, 인터뷰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고 싶었다. 어쨌든 그가 근무하던 치과병원은 오래 있을 곳이 아닌, 임시로 근무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결국, 6개월 후, 다른 도시로 떠났다. 세월이 지나, 그는 그곳에서 정착하여 개인 사무실을 차렸다. 그리고 아들도 하나 더 낳았다. 나와 개인적으로 사귄지는 6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그 후 그는 1년에 1번은 우리 교회를 찾아 주었다. 그 동안, 큰아들이 장성해서 아비의 뒤를 이어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삶은 미국에서 성공한 케이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미국에 왔을 때는 40세였다. 나이 40이면 늦게 이민을 온 것이다. 치과 교육도 미국에서 받은 것이 아니고, 필리핀이었다. 이민생활에 성공하기에는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꾸준한 그의 노력, 인간미 넘치는 비지네스, 그리고 약사출신 그의 아내가 미국에 정착하고 성공하는데 커다란 한 몫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많이 이룩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부드럽고,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끝은 환자들의 치아를 잘 돌보아 주는 것 같다. 

짐작하건데,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도 잘 하리라고 믿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드럽고, 그러나 안으로는 강하고... 한편으로는, 사리판단을 잘하는 현명한 아내가 옆에서 응원하고... 그런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믿는다. 아쉬운 점은, 한 동네에서 신앙생활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난 인간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져 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다시 만나는...것이 삶이다. 그러려니...하면서 살면 된다. 나와 나이차는 좀 있지만,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친구란, 반드시 나이가 비슷해야만 맺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