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city Church of Santa Maria

칼럼 (Column)
 
Date : 18-06-11 08:08
털보 아저씨와 몽당 빗자루
 Writer : 관리자 (73.♡.164.79)
View : 165  
아침 출근 때마다 자주 보는 털보 아저씨가 있다. 그는 서부활극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중절모자를 푹 눌러쓰고, 콧수염과 양 옆 구렛나루 수염을 길게 기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그의 나이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 혼자 그를 친근감을 주는 “털보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집이 없는 사람이다. 사시사철 긴 오바를 걸쳐 입고 다닌다. 그를 만나는 장소는 대부분 베트라비아/브로드웨이 사거리를 중심으로, 오늘은 이쪽방향, 내일을 저쪽 방향으로 걷거나, 혹은 서 있는다. 그는 항상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다. 때로는 성경책인 듯하기도 하고, 때로는 샤핑백 안에 무엇인가를 잔뜩 들고 다닌다. 그를 만나는 시간은 대부분 출근 시간이다.     
  
그를 만나도 안 만나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그를 만나지 못하는 날은 무엇인가, 마음속에 허전한 느낌을 느낀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도,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정답게 느껴진다. 지난겨울이었다. 며칠 간 그를 볼 수 없었다. 괜히 궁금해졌다. 혹시 그가 아프지 않은가? 그가 어디 갔나? 혹시 그가 죽었나?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게 되었다. 마치, 집 마당에 있는 몽당 빗자루...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몽당 빗자루가 막상 없어지면, 그 자리가 비워,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듯이, 털보 아저씨가 안 보이면, 허전함을 느낀다. 그래서 베트라비아/브로드웨이 사거리를 지날 때는,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그가 지나가는지...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를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때로는 그를 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사는지, 왜 그렇게 사는지... 그에 대해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그에게 말도 걸어보고 싶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옷 입은 것이 독특하고, 일정한 시간에 그를 보기 때문에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계속 사용하자니 별 용도도 없는 몽당 빗자루라 할지라도 오래 두면 정이 들듯이, 털보 아저씨의 경우도 그러하다. 

가정 식구들이 함께 살다보면 정이 든다. 식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함께 오래 생활하다보면 정이 든다. 교회 생활이 그러하고, 친구들 간의 관계도 그러하다. 직장에서 함께 생활한 동료들도 그러하다. 인간은 함께 생활하면 정이 들게 되어 있다. 그 정에는 괴로운 것도 있고, 즐거운 것도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고운정 미운정”이라고 말했나 보다. 정든 사람이 떠나갈 때는 슬픔이 더 해진다. 내 마음속에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그 슬픔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몽당 빗자루라 할지라도 오래 동안 놔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람 사는 집같이 느끼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