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city Church of Santa Maria

칼럼 (Column)
 
Date : 19-05-27 08:30
현충일 (Memorial Day)을 기억하며
 Writer : 관리자 (73.♡.17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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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한국의 경우는, 일본의 속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미국에도 현충일이 있다. 미국을 지키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받친 자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미국은 1차, 2차 대전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 전쟁 때도 그러하였다. 그 외에도 이라크 전쟁, 테러분자들과의 전쟁...등, 미국은 세계 각국,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에 참전...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하였다. 

특히 미국은 한국에게 나라를 찾아주기 위해 일본을 항복시켰다. 한국동란 때도,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이 지구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파병되어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다. 한국전 당시, 워커 8군 사령관은 의정부 근방에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한국군이 몰던 트럭에 치어 즉사했다. 

한국 전선에 투입된 미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은 대전에서 공산군에게 밀려 후퇴하던 중, 길을 잃고 35일간 낯선 한국의 마을과 산을 헤매고 다니다가 한국인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으나 모두 3번 배신을 당했다. 첫 번째 한국인은 그를 보호하는 척 하다가 북한군에게 신고하였으나, 딘 장군은 금방 알아차리고 총을 쏘면서 도주하였다. 두 번째는 딘 장군이 어떤 한국인 집에 숨었는데, 며칠 간 보호를 받던 중, 집안 식구들이 “나가라”고 소리쳐서 그 집에서 쫓겨났다. 세 번째는 그가 대구를 향해서 걷고 있었는데, 두 한국인이 그를 안내하는 척 하다가 북한군에 신고하여, 딘 장군은 포로가 되었다. 그 대가로 두 한국인은 북괴로부터 당시의 돈으로 3000원씩 현상금을 받았다. 한국을 구하러 와서 목숨을 바친 미군들에게, 그리고 미군을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돈을 받은 한국인들이 있었다. 

워커 장군의 후임으로 밴플리트 장군이 왔다. 그의 아들은 전폭기 조종사였는데, 북한 폭격 임무를 수행 중 격추되어 순직하였다. 미군이 한국전 당시 노근리에서 많은 양민을 학살한 사건을 한국에서 문제시 삼았다. 당시 양민 중에는 북한군들이 양민으로 위장해서 그 속에 섞여 있으면서 미군을 공격하였다. 미군은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양민을 학살하였다. 노근리 사건에 대해 한국인들은 흥분하였지만, 미군 지휘관을 팔아넘긴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사람은 당장의 이득을 위해 부모고, 스승이고, 친구를 배반한다. 오늘의 한국인들은 미국에 대해 전혀 고마움이 없다. 오히려 미국이 남북통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좌익들이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현충일을 생각하며, 새삼스러이 미국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